황석영"아우를 위하여"를 표절한 이문열"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문열을 고발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대하여
반 경 환

  아마도 우리 한국인들은 이문열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작가로 생각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이문열은 1948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중퇴하고,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塞下曲」이 당선되어 한국문단에 데뷔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ꡔ사람의 아들, 젊은 날의 초상, 영웅시대, 오디세이아 서울ꡕ, ꡔ황제를 위하여ꡕ, ꡔ시인ꡕ, ꡔ선택ꡕ, ꡔ변경ꡕ 등의 장편소설과 ꡔ이문열 중단편 전집ꡕ(전5권)이 있고, 그의 산문집 ꡔ사색ꡕ, 「시대와의 불화ꡕ, 평역소설 ꡔ삼국지ꡕ와 ꡔ수호지ꡕ 등이 있다. 따라서 그의 ꡔ사람의 아들ꡕ(일본, 네덜란드), ꡔ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ꡕ(일본, 스페인, 콜롬비아, 이탈리아), ꡔ금시조ꡕ(일본, 독일, 콜롬비아, 이탈리아, 프랑스), ꡔ황제를 위하여ꡕ(프랑스), ꡔ시인ꡕ(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콜롬비아) 등이 외국어로 번역되었고, 또한 그는 ‘오늘의 작가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21세기문학상’ 등, 우리 한국의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바가 있다. 1,000만부   이상이 팔려 나갔다는 ꡔ삼국지ꡕ를 포함하여 그의 작품들은 2,000만부 이상이 팔려 나갔으며, 그는 한국문학의 역사상 최초로 소설가 재벌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문열의 소설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또, 그의 문학성을 조금도 인정을 하지 않고 있다. 그는 그의 문학적 주제를 쉽고, 재미 있게, 엮어나갈 줄 아는 재능을 지녔으나, 그 문학적 주제를 ‘대서사시적인 주제’로 승화시킬 수 있는 역량이 없는 것은 물론, 자기 자신의 타성과 관성의 늪에 빠져서 너무나도 대중적인 통속소설들을 대량생산해 내고 있었고, 이제는 그 상업적인 마수의 늪에 빠져서 ꡔ삼국지ꡕ와 ꡔ수호지ꡕ에 이어서, ꡔ초한지ꡕ를 평역하는 추태를 연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최고 작가가 거듭거듭 자기 자신을 갱신하고 우리 한국문학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이끌어 가려고 노력을 하기는 커녕, 중국의 고대소설들----정통소설도 아닌 무협 소설들----을 평역하고 있다니, 가히 그의 돈벌이에 대한 탐욕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어쨌든 이문열의 ‘역사철학의 부재현상’, ‘대중적인 통속소설의 대량생산’, 그리고 ‘최소한도의 문학적 자부심마저도 잃어버린 상업주의’를 혐오하고, 그리고 호머와 셰익스피어와 괴테와 제임스 조이스와 프란츠 카프카는 존경을 해도 그의 문학적 성과는 조금도 인정을 하지 않고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소설가의 사명’을 망각한 이문열의 ‘도덕적 정결성’에 있다고 믿고 싶다. 이문열의 도덕적 정결성은 이미, 도저히 치유될 수 없을 만큼의 훼손을 입었고, 바로 그곳에서 그의 역사철학의 부재현상, 대중적인 통속소설의 대량생산, 그리고 그의 상업주의가 배태되어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이문열은 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를 하고, 그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은퇴를 해야 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좀더 과감하게 말한다면, 이문열의 대표작품인 ꡔ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ꡕ은 더럽고도 추악한 작품이며, 우리 한국인들의 명예와 명성에 똥칠을 해댄, 표절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ꡔ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그 무엇보다도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를 표절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1970년대 초에 황석영은 그의 「아우를 위하여」을 발표했고, 이문열은 1987년도에 ꡔ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ꡕ을 발표했다. 나는 이제부터 황석영과 이문열의 소설의 이야기를 요약해보고, 그 소설들의 주제와 등장인물의 성격, 그리고 너무나도 명확한 표절의 문장들과 글도둑질의 역사 철학적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바램이 있다면, 이 글을 계기로 우리 한국사회에 미만해 있는 글도둑질의 문제가 종식되고, 하루바삐 우리 한국의 소설가들이 세계적인 차원에서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게 ‘대서사시적인 문학작품’들을 연출해내야 된다는 점일 것이다.

  황석영의 소설, 「아우를 위하여」의 주인공인 ‘나’(김수남)는 11살 때 부산의 초등학교에서 영등포 소재의 초등학교(국민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그는 비록, 키가 작고 나이는 어리지만, 첫 번째 일제고사에서 ‘수석’을 차지할 만큼 총명한 학생이며, 과외공부를 하고 점심을 굶는 아이를 위하여 도시락을 하나 더 싸올 수 있을 만큼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의 아들이다. 그가 피난지 부산의 학교에서 영등포 소재의 학교로 전학을 올 무렵에는, 미군부대 하우스 보이 출신인 이영래가 ‘새로운 가다’로 등극을 하게 된다. 그는 벌써 다리에 털이 돋아났으며 눈은 가늘게 찢어지고 어깨가 떡 벌어진 아이였다. 그는 첫째 가다인 장판석이를 빈 발전실로 유인해다가 몽둥이로 습격해서 항복을 받았고, 둘째 가다인 은수와 종하를 그의 심복으로 삼게 되었다.
  영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구시대적 인물인 ‘메뚜기’ 선생의 비호와 묵인 아래 ‘반장’이 되었고, 종하를 기율부장, 은수를 총무로 임명하여 거느리게 된다. 그는 발언권을 얻어서 동의와 재청을 받고 의견이 채택되던 자치회의의 규율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공포와 위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모든 회의를 진행하게 된다. 그의 말 한 마디는 곧 학급 전체의 의견이었고, 그가 지시하는 일은 그것이 씨름이든, 축구시합이든 간에,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은행지점장의 아들, 극장, 양조장집의 아이들로부터 장난감, 극장표, 돈 같은 것을 빼앗는 대신, 그 부잣집 아이들에게는 청소 당번을 면제시켜주는 전략을 구사할 줄도 알고 있었고, ‘담임선생 메뚜기네 아기의 돐 선물’과 ‘청소도구’를 마련한다는 구실 아래, 걸핏하면 돈을 모금하여 제멋대로 탕진하고, 그것을 의심하는 아이에게는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메뚜기는 학급에 기강이 서고 자치능력이 향상된 것에 대하여 대단히 만족해하고 영래의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를 묵인해준다. 따라서 영래의 전제군주적인 권력 행사에 반항하는 자는 학급의 배반자이며, 그 어떤 처벌이나 폭력도 감수해야만 되었다.
  하지만 영래의 그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에 균열이 생긴 것은 교생 선생님이 부임을 해오고 부터였다. 담임선생인 메뚜기가 교사의 사명과 그 의무를 망각한 구시대적인 인물이라면, 새로운 여자 교생 선생님은 교사의 사명과 그 의무에 충실한 인물이었다. “새로 오신 교생 선생님은 무엇이나 열성을 다해 가르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어느 때는 우리가 모르는 어려운 얘기까지 꺼내어 학과의 분명치 않은 곳을 밝혀주려고 했다”라는 말과, “혼자서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사람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면 여럿이서 고쳐줘야 해요. 그냥 모른 체 하면 다 함께 나쁜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공부를 잘 한다거나 집안 형편이 좋은 학생은 그렇지 못한 다른 친구들에게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라고, 나를 타이르는 말이 그것이다. 우선 첫 번째로, 영래와 그 패거리들이 교생 선생님의 환심을 사려고 한 ‘외제 나일론 스타킹 선물사건’이 역효과를 불러일으켜서 교생 선생님의 노여움을 사게 된 것이고, 두 번째로, 영래와 그 패거리들의 최후의 발악과 도 같은 횡포에 하나, 둘, 어린 아이들의 ‘童心’이 이반을 보이면서, 그 선생님을 모욕하는 ‘춘화사건’을 계기로----‘내’가 주동이 되어서---- 영래와 그 패거리들을 몰락시키게 한 것이다. 나는 그 선생님의 가르침 대로 영래의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를 종식시키게 된 것이고, 그 선생님이 가르쳐 준 도덕적 교훈을 ‘군대에 가는 아우에게’ 지난 날에 대한 회상의 형식으로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교생 선생님은 도덕적 정결성의 화신이며, ‘어떤 일이 있어도 정의가 짓밟혀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 교훈을 가르쳐 준 인물이다. “여럿의 윤리적 무관심으로해서 정의가 밟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거야”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이문열의 ꡔ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ꡕ의 주인공인 ‘나’(한병태)----‘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반동적인 인물인 엄석대를 지시하고 있지만, 그 소설을 실제로 이끌어 가고 그 소설적 주제에 부합되는 인물은 ‘나’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12살 때, 서울의 명문초등학교(국민학교)에서 한 작은 소읍의 ‘Y초등학교’로 전학을 간다. 그는 비록, 키가 작고 나이는 어리지만 서울의 일류학교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총명한 아이이며, 아버지는 군청에서 군수 다음의 고위직에 있을 만큼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의 아들이다. 그가 서울의 명문초등학교에서 시골의 Y초등학교로 전학을 갔을 때는 “머리통이 하나는 더 있어 뵐 만큼 큰 키”와 “쏘는 듯한 눈빛”을 지닌 엄석대가 체육부장과 미화부장을 거느리고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를 구축해놓고 있었다.
  엄석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구시대적인 담임선생님의 비호와 묵인 아래 급장이 되었고, ‘숙제검사’와 ‘청소검사’ 등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권한을 ‘으시시할 만큼 아이답지 않은 침착함과 치밀함’으로 수행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하늘나라의 천사처럼, 학급내의 문제가 생길 때마다 ‘구원자’와 ‘해결사’로 나타났고, 그 댓가로 찐 고구마, 달걀, 볶은 땅콩, 사과 등을 예사로 얻어 먹고 있었다. 그 역시도 발언권을 얻어서 동의와 재청을 받고 의견이 채택되던 자치회의의 규율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공포와 위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모든 회의를 진행하게 된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곧 학급 전체의 의견이 되었고, 그가 지시하는 일은 그 무엇이든지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석대의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에 반발하여, ‘그 비열한 추문폭로작전’----석대의 금품및 물품착취사건 등----을 펼쳐 나갔지만, 그때마다 담임선생님의 은밀한 비호와 묵인 아래, 나만이 더욱 더 외롭고 힘든 생활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 추문폭로작전 이후, ‘감찰권’과 ‘처벌권’을 갖고 있는 석대의 박해는 더욱 더 ‘나’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날이면 날마다 다른 아이들로부터 도전(싸움)을 받게 되거나, ‘나’의 사소한 잘못마저도 침소봉대되어, 내가 거꾸로 ‘불량스러운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외롭고 고독했던 투쟁도 ‘유리창 닦기 검사현장’에서의 ‘저항을 포기한 자의 눈물’을 보인 이후, 그 끝장을 보게 되고 만다. 그리고 나는 석대의 사나이 다운 관용적인 마음에 감동을 받아서 ‘샤프펜슬’을 상납하게 되고, 그 하늘나라의 천사와도 같은 ‘석대의 은혜’로 더없이 달콤한 ‘비굴한 굴종의 열매’를 맛보게 된다. 이제 실력 이하로 뒤쳐져 있었던 주먹서열도 바로 잡게 되었고, 내가 ‘사면’을 받은 것이 알려지자 많은 친구들도 사귈 수가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처럼 나를 미워하던 담임선생님도 돌아온 ‘탕아’처럼 반겨주었고, 겨울방학의 일제고사에서는 마침내 2등을 되찾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들이 석대에게 갖다 바치거나 빼앗긴 것들, 그리고 우리가 석대의 이름으로 시험지를 바꿔쳐준 것 등은 “석대 왕국에 안주한 신민으로서 자발적으로 바친 조세나 부역에 가까운 것”이었고, 그만큼 비굴한 굴종의 열매는 달디 달았던 것이다.
  그러나 석대의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에 균열이 생긴 것은 6학년으로 진급하여 새로운 담임 선생님을 맞이하고 부터였다. 5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이 교사의 사명과 그 의무를 망각한 구시대적인 인물이라면 새로운 담임선생님은 교사의 사명과 그 의무에 충실한 인물이었다. 사범학교를 나오신 지 얼마 안 되고 그 유능함과 성실함을 인정받고 있는 담임 선생님은 급장선거에서 61표 중 59표로 엄석대가 당선이 되자 그 일인 지배체제에 제동을 걸었고, 다른 아이들이 시험지를 바꿔쳐준 결과 평균 98점으로 전교 1등을 독차지 하던 엄석대에게 문제를 풀게하여 엄석대의 일인 지배체제를 종식시켰다. “나는 되도록이면 너희들에게 손을 안 대려고 했다. (......)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을 몰랐고 불의한 힘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 그것도 한 학급의 우등생인 녀석들이.” 그리고 이밖에도 엄석대의 비행들----금품과 물품착취 및 모금액 횡령사건 등----이 백일하에 폭로되고, 끝끝내 엄석대는 자퇴를 하게 되고 만다.
  그후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대기업의 사원, 영업사원, 학원강사를 전전했지만, 엄석대는 ‘우리들의 영웅’으로서 언제나 나의 마음 속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때늦은 휴가차 강릉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거기서 형사들에 의해서 쇠고랑이 채워지는 엄석대를 보게 되고 만다. 엄석대는 ‘우리들의 영웅’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었던 것이다. 이문열의 ꡔ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ꡕ도 ‘어떤 일이 있어도 정의가 짓밟혀서는 안 된다’는 윤리적 명제가 그 소설적 주제라고 할 수가 있다.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와 이문열의 ꡔ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ꡕ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핵심적인 줄거리로 요약을 할 수가 있다. 먼저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는,

  1, 주인공인 나(김수남)는 피난지 부산의 초등학교에서 영등포의 초등학교로 전학을 간다. 나는 11살이고 키는 작고 나이는 어렸지만 첫 번째 일제고사에서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총명한 아이이다. 나는 명문중학교에 가기 위하여 과외수업도 받고, 점심을 굶는 아이들을 위하여 도시락을 하나 더 싸올 수 있을 만큼 비교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의 아들이다;
  2, 내가 전학을 간 그곳은 ‘메뚜기’라는 담임선생님의 비호와 묵인 아래, 미군부대하우스 보이 출신인 이영래가 판을 치는 곳이다. 이영래는 열 다섯 살로 눈은 가늘게 찢어지고 어깨가 떡 벌어진 악동이다;
  3, 나와 우리 학급의 친구들은 이영래와 그 부하들에게 부단히 억압을 받고 착취를 당한다;
  4, 하지만 그 이영래의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가 끝장을 보게 된 것은 새로운 교생선생님이 부임을 해왔기 때문이다. 사회적 정의감에 불타는 교생 선생님에 대한 ‘외제 나일론 스타킹 선물사건’과 그 선생님에 대한 ‘영래네 패거리들의 욕설과 춘화사건’ 이후로, ‘나’와 우리들은 일치 단결하여 그 영래네 패거리들을 몰락시키게----‘메뚜기’라는 담임 선생님은 시대착오적이며 구시대적인 인물이었지만, 새로운 교생 선생님은 이영래의 비행을 주목하고 그의 악동짓을 퇴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된 것이다;
  5, 그 결과 ‘어떤 일이 있어도 정의가 짓밟혀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정의(소설의 주제)가 실현된다

라고 요약할 수가 있으며, 이문열의 ꡔ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ꡕ 역시도,

  1, 주인공인 ‘나’(한병태)는 서울의 명문 초등학교에서 어느 작은 소읍의 Y 초등학교로 전학을 간다. 나는 12살이고 키는 작고 나이는 어리지만 서울의 명문초등학교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을 정도로 총명한 아이이다. 나는 공부 이외에도 ‘그림그리기’를 잘하고, 나의 아버지는 군수 다음의 고위직에 있을 만큼 비교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의 아들이다.
  2, 내가 전학을 간 그곳은 담임 선생님의 비호와 묵인 아래, 고아출신인 엄석대----그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가 판을 치는 곳이다. 엄석대는 열 다섯 살이 되었을 정도로 ‘머리통이 하나는 더 있어 뵐만큼 큰 키’와 ‘쏘는 듯한 눈빛’을 지닌 악동이다;
  3, 나와 우리 학급의 친구들은 엄석대와 그 부하들에게 부단히 억압을 받고 착취를 당한다;
  4, 나와 엄석대와의 대결국면에서 그 갈등이 해소된 것은 내가 엄석대의 절대적 권력에 무릎을 꿇고 그의 부하가 된 것이지만, 그러나 엄석대의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가 끝장을 보게 된 것은 6학년 때, 새로운 담임 선생님이 부임을 해왔기 때문이다. 5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은 시대착오적이며 구시대적인 인물이었지만, 6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은 엄석대의 비행을 밝혀내고 그의 악동짓을 무섭게 단죄한다;
  5, 그 결과, 사회정의(소설의 주제)----‘어떤 일이 있어도 정의가 짓밟혀서는 안 된다’----가 실현되고, 엄석대는 자퇴를 하고 사회의 깡패가 된다.

라고, 요약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미 대부분의 독자들은 눈치를 챘겠지만,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와 이문열의 ꡔ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ꡕ은 단편소설과 중편소설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똑같은 주제, 똑같은 구조, 똑같은 이야기, 그리고 똑같은 등장인물들의 성격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있고, 그것은 아마도 이문열이 황석영의 소설을 하나 하나 모조리 베껴갔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황석영의 소설이 1970년대 초의 작품이고, 이문열의 소설이 1987년도 작품인 만큼---- 황석영이 외국 작가의 작품을 하나 하나 모조리 베낀 것을 보고 이문열 역시도 공범자의 미소를 띠고 그 모방범죄를 저질렀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황석영이 그의 작품, 「아우를 위하여」가 표절된 것을 알고 묵인해왔다면, 그는 이문열과의 떳떳치 못한 검은 거래를 했을 것이고, 적어도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공범자의 침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후자의 가능성이 매우 큰 데, 왜냐하면, 자기 자신의 작품의 주제, 구조, 이야기, 그리고 등장인물의 성격까지도 하나 하나 모조리 베껴간 대사기꾼의 범죄행위를 용서할 수 있는 작가는 아마도 이 지구상에서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 사소한(?) 범죄행위의 산물인 ꡔ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ꡕ이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게 되고, TV와 연극과 영화의 텍스트가 되고,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베스트 셀러----아직도 ꡔ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ꡕ은 가장 많이 팔리는 스테디 셀러 중의 하나일 것이다----가 되어준 것은 우리 한국문학사의 비극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어디 그뿐이던가? 이미 앞에서 소개했던 대로, 대한민국의 가장 대표적인 문학작품으로 일본, 스페인, 콜롬비아, 이탈리아 등의 언어로도 번역되었고, 이제는 어느덧 초등학교의 교과서에까지도 실리게 되었다. 이문열의 더럽고 추악한 글도둑질----절도행각----이 단군 이래의 최대의 대형사기사건으로 이어지고, 그에게는 수십억원대의 돈과 명예와 명성을 안겨다가 주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아, 우리는 이것을 ‘지적소유권’을 지상최대의 명제처럼 받들어 모시는 문화선진국민들에게, 또 그리고 너무나도 티없이 맑고 순진한 이 대한민국의 어린 학생들에게 어떻게 사죄하고 설명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도 권선징악적이고, 이문열의 ꡔ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ꡕ도 권선징악적이다. 그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정의가 짓밟혀서는 안된다’는 소설의 주제를 이루면서, “여럿의 윤리적 무관심으로 해서 정의가 짓밟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거야”(황석영)라는 말과, “너희들은 당연한 너의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을 몰랐고, 불의한 힘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이문열)라는 잠언적인 경구로 이어지고도 있었던 것이다.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는 단순구조로 되어 있고, 이문열의 ꡔ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ꡕ은 삼중의 구조로 되어 있다. 황석영의 소설은 그것이 단편소설인 만큼, ‘나와 학급의 아이들’/ ‘영래와 영래네 패거리들’의 관계가 단 한 번의 반전으로 끝을 맺게 되지만, 이문열의 소설은 그것이 중편소설인 만큼, ‘나’와 ‘석대와 석대의 패거리들’의 긴장 관계가 ‘나의 굴복’으로 반전을 맞이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또한, 그 태평성대의 시대가 새로운 담임 선생님의 등장으로 또다시 파탄을 맞이하게 되고,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이후, 지난 날의 엄석대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재등장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황석영과 이문열의 소설의 주제와 구조, 그리고 그 이야기와 등장인물의 성격에 별다른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ꡔ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ꡕ은 황석영의 소설에다가 약간의 스토리와 이문열 특유의 냉소주의적인 색채를 덧씌웠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주제, 구조, 스토리 이외에도 그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따져 보지 않으면 안 된다. 황석영의 ‘나’는 11살로, 비록, 키가 작고 나이는 어리지만 매우 총명하고 똑똑한 아이이다. 그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집안의 아들이며, 교생 선생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고, 이영래와 그 패거리들의 악동짓을 종식시키게 되는 아이이다. 이문열의 ‘나’는 12살이며, 그 역시도 키가 작고 나이는 어리지만 매우 총명하고 똑똑한 아이이다. 그 역시도 비교적 여유가 있는 집안의 아들이며, 나중에는 비록, 굴복을 하게 되지만, 엄석대에게 마지막까지 완강하게 반항을 했던 아이이다. 이영래는 미군부대 하우스 보이(고아) 출신으로서----열다섯 살의 학급반장으로서----그의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를 구축해놓은 악동이며, ‘메뚜기’라는 담임선생님의 비호와 묵인 아래, 온갖 나쁜 짓을 다 하게 된다. 하지만 사범학교 출신의 교생 선생님이 부임을 해오자, 그의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마침내 ‘나’와 다른 급우들에 의해서 그 몰락을 맞이하게 된다. 이문열의 엄석대 역시도 고아출신으로서----열다섯 살 정도의 학급반장으로서---- 그의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를 구축해놓은 악동이며, 담임 선생님의 비호와 묵인 아래, 온갖 나쁜 짓을 다 하게 된다. 하지만 6학년 때, 새로운 담임 선생님이 부임을 해오자 그의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그는 그의 급우들에 의해서 그 몰락을 맞이하게 된다. 그 다음, 황석영의 ‘기율부장’과 ‘총무’는 이문열의 ‘체육부장’과 ‘미화부장’으로 변형되고, 그들은 모두가 다같이 이영래와 엄석대의 심복으로서 온각 악동짓을 일삼게 된다. 그리고 또 그 다음, 황석영의 ‘메뚜기’ 담임 선생님과 이문열의 담임 선생님 역시도 너무나도 똑같은 판박이이며, 그들은 모두가 다같이 교활하고 영악한 악동들을 비호하거나 도대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는 관심조차도 없는 매우 반동적이며 시대착오적인 인물들이다. 황석영의 교생 선생님은 남 다른 교사의 사명과 그 의무에 충실한 인물이며, 그녀는 이문열의 담임 선생님과 똑같은 인물이다. 그 선생님들은 다같이 젊고 참신하며, 악동들의 비행을 모조리 샅샅이 들춰내며, ‘어떤 일이 있어도 정의가 짓밟혀서는 안 된다’는 소설적 주제를 이끌어 낸다. 전자의 선생님들이 매우 반동적이며 시대착오적인 인물들이라면, 이 후자의 인물들은 하나의 조력자, 혹은 훌륭한 선생님들로서 그만큼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인물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에 있어서 주제, 구조, 스토리, 그리고 그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똑같다면, 이미, 그것은 ‘글도둑질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떠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너무나도 뻔뻔스럽고 파렴치한 범죄행위이기 때문이다. 나는 황석영과 이문열의 표절의 문제가 왜, 지금까지 한 번도 논의되고 회자되지 않고 있는가를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고 있다. 이 대한민국은 그 이름도 거룩한 ‘표절공화국’이고, 그 글도둑질의 대가들이 모든 大權을 장악하고 있는 사회인 것인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비슷비슷한 분위기, 비슷비슷한 문장들, 그리고 대동소이한 이야기의 내용들을 다시 한 번 우리 대한민국의 독자들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살펴보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피난지 부산의 학교에서, 수복되고도 수년이 지난 서울로 전학을 해왔던 첫날, 기분이 잡쳐 버리고 말았다.
  우리 학교에 미군부대가 들어와 있어서 학년별로 여러 곳에 뿔뿔이 흩어져 빈 창고나 들판에서 공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 교실이 엉망인 것 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 애들은 질이 나빴는데 전쟁통에 몇 년씩 학년을 묵은 큰 애들이 열명 쯤 되었다. 백여 명의 아이들을 키 순서대로 세워놓으면 나 같은 건 겨우 앞줄에서 몇 번째가 될 만큼 작았다. 애들은 내게 아무런 관심도 돌리지 않았으나, 첫 번 일제고사에서 수석을 차지하고 나자 친구가 더러 생기게 됐던 거였다.”
          ----황석영, 「아우를 위하여」(이하 「아...」로 생략)
  “나는 그때껏 자랑스레 다니던 서울의 명문 국민학교를 떠나 한 작은 읍의 별로 볼 것 없는 국민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
  그 전학 첫날 어머님의 손에 이끌려 들어서게 된 Y국민학교는 여러 가지로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붉은 벽돌로 지은 웅장한 3층 본관을 중심으로 줄줄이 늘어섰던 새 교사만 보아온 내게는, 낡은 일본식 시멘트 건물 한 채와 검은 타르를 칠한 판자 가교사(假校舍) 몇 채로 이루어진 학교가 어찌나 초라해 보이는지 갑자기 영락한 소공자의 비애같은 턱없는 감상에 젖어들기까지 했다.”
         ----이문열, ꡔ우리들의 일그러운 영웅ꡕ(이하 ꡔ우...ꡕ로 생략

  “나는 담임 선생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메뚜기라는 별명을 가졌는데, 머리 가운데가 쭉 벗어지고 양쪽 관자놀이 부근에만 곱슬털이 부성부성한 모습이었다. 그는 국민학교 선생님 노릇에 별로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무슨 가게인지를 부업으로 벌여놓고 있었는지라 그는 툭하면 자습 시간을 주고선 하루 온종일 밖으로 나돌아 다녔다.”  ----「아...」
   “머릿기름은커녕 빗질도 안해 부수수한 머리에 그날 아침 세수를 했는지가 정말로 의심스러운 얼굴로 어머님의 말씀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 그가 담임 선생님이 된다는 게 솔직이 그렇게 실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 뒤 일 년에 걸친 악연(惡緣)은 그때 벌써 어떤 예감으로 와 닿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
  그때 내게는 나름대로 내세울 만한 게 몇 있었다. 첫째는 공부, 1등은 그리 자주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그 별난 서울의 일류 학교에서도 반에서 다섯 손가락에 안에 들었다.”    ----ꡔ우...ꡕ

  “영래는 미군부대 하우스 보이로 싸젠이 기른다는 아이였다. 술이 주렁주렁 달린 인디안식 가죽 저고리에 청바지를 입고 시계까지 차고 다녔다. 눈이 가늘게 찢어지고 어깨가 바라진 아이였다. 영래는 벌써 다리에 털이 돋은 열다섯 살박이였다.”                   ----「아...」
  “담임 선생님과 내가 처음 교실로 들어왔을 때 차렷, 경례를 소리친 것으로 보아 급장(엄석대)인 듯한 아이였다. 그러나 내가 그를 엇비슷한 60명 가운데서 금방 구분해낼 수가 있었던 것은 그가 급장이어서라기보다는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있어 뵐 만큼 큰 앉은키와 쏘는 듯한 눈빛 때문이었다.”                    
                            ----ꡔ우....ꡕ

  “이새끼 나는 의장이잖아. 종하는 기율부장, 너는 말이지 총무다.”
                            ----「아...」
  “나는 체육부장이고 쟨 미화부장이다.”  ----ꡔ우...ꡕ

  “새로 오신 교생 선생님은 무엇이나 열성을 다해 가르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어느 때는 우리가 모르는 어려운 얘기까지 꺼내어 학과의 분명치 않은 곳을 밝혀주려고 했었다. 우리 실력을 향상시켜 주느라고 벼락 시험도 자주 치렀다.”                                               ----「아...」
  “6학년으로 올라가면서 (......) 새로 우리 반을 맡게 된 선생님은 사범학교를 나오신 지 몇 해 안된 젊은 분이었다. 아직 경험은 많지 않지만, 그 유능함과 성실함이 인정되어 특별히 입시반 담임 선생님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여럿 가운데서 뽑혀 오신 분인 만큼 새 담임 선생님은 첫날부터 남 다른 데가 있었다. 작은 일도 지나쳐보거나 흘려듣는 일이 없는 만큼이나 느낌도 예민해 첫 종회시간에 이미 그 분은 우리를 은근히 몰아 세웠다. ‘이 반은 왜 이리 활기가 없어? 어릿어릿하며 눈치나 슬슬 보구’......”
                       ----ꡔ우...ꡕ

  “은행 지점장의 아들이나 공장장 아들, 극장, 양조장집 아들 같은 너댓 명의 부잣집 애들은 특히 괴로움을 많이 받았다. 그애들은 뭔가 좋은 것들, 이를테면 장난감, 극장표, 돈같은 것들을 갖다 바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    
  “봇물처럼 쏟아지기 시작한 석대의 비행(非行)은 끝없이 이어졌다. 여자 애들의 치마를 들추게 시켰다든가, 비누를 바른 손으로 수음(手淫)을 하게 했다는 따위 성적인 것도 있었으며, 장삿집 애들은 매주 얼마씩 돈을 바치게 하고, 농사짓는 집 아이들에게는 과일이나 곡식을, 대장간 아이에게는 엿으로 바꿀 철물을 가져오게 하는 따위 경제적인 수탈도 있었다. 돈 백 환을 받고 분단장을 시켜 준 일이며, 환경정리를 한다고 비품구입비를 거두어 일부를 빼돌린 게 밝혀지고, 그 전 해 한 학기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도 나를 괴롭힌 과정도 대강은 드러났다.”   ----ꡔ우리...ꡕ

“바깥 일에 분주한 메뚜기가 돌아왔을 때, 아이들은 영래의 지시에 의하여 자발적인 대청소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메뚜기는 학급에 기강이 서고 자치 능력이 향상된 데 대하여 만족했고, 아이들이 영래를 급장으로 선출한 것에도 별로 이의가 없어 보였다.”
       ----[아...]
“오히려 석대를 관찰하면서 더 자주 확인하게 되는 것은 담임 선생이 그를 신임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들이었다. 그에게 맡겨진 우리 반의 교내 생활은 다른 어느 반보다 모범적이었다. 그의 주먹은 주번(週番) 선생님들이나 6학년 선도(善導)들의 형식적인 단속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우리 반 아이들의 군것질이나 그밖의 자질구레한 교칙위반을 막았다. 그에게 맡겨진 청소검사는 우리 교실을 그 어떤 교실보다 깨끗하게 하였으며, 우리의 화단을 드러나게 환하게 했다. 또 그에게 맡겨진 실습감독은 우리의 실습지에 가장 많은 수확을 안겨주었으며, 그의 강제할당으로 우리 반의 비품은 그 어느 반보다 넉넉했고, 특히 교실 벽은 값진 액자들로 넘쳐날 판이었다. 그가 이끌고 나가는 운동팀은 모든 반(班)대항 경기에서 우리 반에 우승을 안겨주었고, ‘돈내기’란 어른들의 작업방식을 흉내낸 그의 작업 지휘는 담임 선생들이 직접 나서서 아이들을 부리는 반보다 훨씬 더 빨리, 그리고 번듯하게 우리 반에 맡겨진 일을 끝내 주게 했다.”---{우리...}

““짜식들 누가 돈을 떼먹었냐, 얘 맞은 거 담임한테 찌르면 알지?” 영래는 역시 화를 발칵내고 “쓸데 없는 소리 하지마 새꺄” 종하를 윽박지른 다음에 우리에게 씩 웃어보였다. “돈이 남은 건 맞다. 그걸 말이지나는 다음에 쓸라구 남겨뒀던 거야, 축구부를 만들기로 했지. 다른 반과 시합을 갖구 다음번엔 저쪽 오목내 학교 패들하구두 붙는다.” 아이들이 와글와글 손뻑치는 소리.” ---[아...]
  “내가 담임 선생께 석대의 잘못들을 일러바칠 때 그가 멀지 않은 등사기 앞에서 무언가를등사하고 있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제자리로 돌아온 석대는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들고 윤병조 앞으로 갔다.
  “니네 아버지 오늘 돌아오신댔지? 자, 이거 아버지께 돌려드려.”
  그렇게 말하며 라이터를 병조에게 돌려준 석대는 이어 한층 소리를 높여 덧붙였다.
  “혹시 잘못해 불이라도 낼까봐 내가 잠시 맡아 뒀지. 애들은 그런 거 가지고 노는 게 아니야.”
  반 아이들이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였다. 처음 어리둥절해 하던 병조의 얼굴이 이내 활짝 펴졌다.”             ----{우}

  “나는 병아리 선생님이 나오시는 학교에 가는 일이 한편으로는 즐거웠으나, 학급 분위기가 나를 전보다 더욱 더 부끄럽게 만들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특히 토요일 방과 후는 지겨웠다. 영래가 아이들을 오목내 다리 밑의 모래펄로 집합시켜서는 축구시합을 응원하도록 하는 거였다. 반을 위한 단체 행동이었으므로 혼자 빠져 나가게 되면 혼이 날 게 두려웠다. 아마 일주일 동안의 벌청소 당번을 지명받기가 십상이었을 게다. 아이들의 불평 불만이 은연 중에 조금씩 무르익어가게 되었던 것은 자칭 기율부장이라는 임종하와 총무 박은수의 횡포 때문이었다.” [아]
“내가 석대의 나쁜 짓을 캐모으려 한 것은 그것으로 먼저 담임 선생과 그를 떼어 놓기 위함이었다. 나는 그의 힘 중에서 싸움솜씨에 못지 않게 많은 부분이 담임 선생의 신임에서 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청소검사 숙제검사에 심지어는 처벌권까지 석대에게 위임하는 담임 선생의 그 눈먼 신임이 그의 폭력에 합법성을 부여해 그를 그토록 강력하게 우리 위에 군림하게 했다”----{우}

“우리는 병아리 선생님을 좋아한다.” “그분은 훌륭한 사람이야.” 기가 죽어 지내던 장판석이도 종하를 내게서 떼어 밀치면서 말했다. “애들 때리면 재미 적다.” 은수와 종하는 아직도 영래의 행동을 기다리며 씨근거렸다. 아이들이 사방에서 한 마디씩 했다. “학급비를 거둬다 우리한테 알리지두 않고 맘대로 쓴 건 잘못이다.” “요전에 동열이를 때린 것도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도 자치회에서 물어보지도 않구 혼자 맘대로 한 건 더욱 잘못이다.“ 영래는 자기가 반 아이들에게서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는 걸 알았는지얼굴이 샛노랗게 질려 있었다.” “너희들 반장에게... 이러기냐?” “너는 반장 자격이 없어.” “그만 둬라.” 나는 종하에게 종이쪽지를 내밀었다. 종하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는 듯이 영래를 바라보자 그애는 의외로 나약해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찢어, 임마.” 종하가 그걸 찢었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내게 사과 안 할 테냐?” 아이들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래 사과하란 말야, 짜식들아.” “사과 안하면 몰매를 놓아서 쫓아내라.” 종하가 아주 비굴하게 들릴까 말까한 음성으로 말했다. “미안하다.” ---[아]
“박원하, 황영수, 이치규, 김문세......”
  이어 담임 선생님은 다시 여섯 명의 아이들을 불러냈다. 모두 번갈아가며석대의 대리시험을 쳐준 우리 반의 우등생들이었다. 낯이 하얗게 질린 그애들이 쭈볏거리며 교탁 앞으로 나서자 담임 선생님이 약간 풀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너희들이 지난 한 달의 각종 시험에서 번갈아가며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딴 이름을 써낸 걸 알고 있다. 어쩔래? 맞고 입을 열래? 좋게 물을 때 바로 댈래? 그게 누구야? 누구와 시험점수를 바꾼거야?”
  그런데 담임 선생님의 그 같은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그때껏 초점을 잃고 반쯤 감겨져 있던 석대의 눈이 번쩍 치켜 떠지며 갑자기 무서운 빛을 뿜었다. 들고 있는 팔의 무게로 처져 있던 그의 어깨도 어느새 꿋꿋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걸 본 아이들이 움찔했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기울어진 뒤였다. 아이들은 이미 석대가 약한 걸 보았고 따라서 서슴없이 강한 담임 선생님을 택했다.
  “엄석댑니다.”
  아이들이 입을 모아 그렇게 대답하자 석대는 괴로운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분명히 석대의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지만 나는 몸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그의 신음소리를 들은 듯 했다.”    ----{우리...}


  “선생님과 헤어지기 며칠 전에 어머니에게 졸라서 그분을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었지. 그날 나는 부끄러워하면서 내 악몽의 비밀을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은 말했어. “애써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무서워만 하면 비굴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겁장이가 되어 끝내 무서움에서 놓여날 수가 없는 거예요.”----[아]
  “나는 되도록 너희들에게는 손을 안 대려고 했다. 석대의 강압에 못 이겨 시험지를 바꿔 준 것 자체는 용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안 너희들의 느낌이 어떠했는가를 듣게 되자 그냥 참을 수가 없었다.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그것도 한 학급의 우등생인 녀석들이...... 만약 너희들이 계속해 그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맛보게 될 아픔은 오늘 내게 맞은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우리...}

  만일 그렇다면 글도둑질, 즉 표절의 유혹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이미 앞에서, 이문열의 글도둑질의 원인을 그의 역사 철학의 부재현상과 대중적인 통속소설의 대량생산, 그리고 그의 상업주의를 그 세 원인으로 지적한 바가 있다. 그의 역사 철학의 부재현상은 그가 ‘학문의 꽃’인 철학의 수업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 철학적으로 깊이 있게 사유할 수가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글도둑질이란 타인의 말과 타인의 사유에 대한 노예적인 복종태도----그러니까 타인의 지적 재산을 함부로 훔쳐가는 것이다----를 뜻하고, 독창성이란 새로운 사물과 현상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거대한 사유체계로 엮어낼 수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독창성이란 사상과 이론에서 그 정수를 맛볼 수가 있는 것이며, 사상가나 이론가가 아닌 사람들은 이 세상의 어중이 떠중이들로서----기껏해야 글도둑질의 대가로서----자기 자신의 생명이 되고 피가 되는 진리를 얻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은 옛날부터 독창적인 사상가와 이론가들에게 비싼 수업료와 그 댓가를 지불하고 겨우 그날그날의 생활양식(지식)을 얻게 된다. 사상가와 이론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찬란하고 화려한 사상의 신전에서 살고 있는 지적 자본가라면, 이 세상의 어중이 떠중이들은 그들이 먹다버린 음식찌꺼기와 헌옷가지, 그리고 그들의 발바닥의 때를 닦아주고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날품팔이들에 불과하다. 사상가와 이론가의 생활은 지혜로운 생활이며, 그들은 만인들의 생각과는 정반대 방향에서, 이 세상의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 사색의 황홀함 속에서 살아간다.
  그는 오늘도 ‘愛知의 숲’에서 니체와 성교를 하고, 쇼펜하우어와 성교를 하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데카르트와 호머와 셰익스피어와 괴테와도 성교를 한다. 그가 그들의 책을 한 번 읽을 때는 그들의 생각만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고, 그가 두 번을 읽을 때는 그들의 최대의 장점만을 생각하면서 읽고, 그가 세 번을 읽을 때는 그들의 단점만을 찾아내려고 읽고, 그리고 그가 네 번을 읽을 때는 그들을 발밑으로 깔아뭉개 버리려고 읽는다. 그러나 그가 다섯 번, 여섯 번, 열 번, 그리고 백 번을 읽을 때는 그들의 단점까지도 껴안으면서, 그들의 장점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대부분의 형편없는 惡書들은 첫 번째 읽기 과정에서 탈락하고, 그리고 이문열의 책과도 같은 흥미본위의 악서들은 두 번째 읽기과정에서 탈락한다. 왜냐하면 그 악서들은 어느 것 하나도 그의 지적 성감대를 자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두 번째 책읽기 과정에서 충분히 그 장점이 인정되었으면서도 내가 장 자크 루소를,

  “루소의 착하고 선량한 마음씨는 그의 도덕철학을 낳았지만, 그러나 그것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구속한다는 데서 몹시도 괴로워했던 인물이다. 타인에 대한 끊임없는 배려와 친절은 만인평등에 입각한 ‘사회계약론자’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ꡔ에밀ꡕ을 출간한 이후, 그가 주변인으로 밀려나서 그처럼 가혹하게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개인으로서의 독창성과 자유를 극대화시킨 결과이다. 사회계약론자가 그 사회성을 잃어버리고 끊임없이 떠돌아 다녀야만 했던 사회적 부적격자라니, 이 보다 더한 역설과 그 비극적 참상이 어디 있을까? 나는 루소의 천재성은 인정하지만, 그의 선악의 이분법에 사로잡힌 도덕성은 인정할 수가 없다. 그의 제자 ‘에밀’은 도덕적 기계인간이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육체적, 정신적 기형아에 불과하다”

라고, 비판한 것처럼 그 단점이 드러나지 않는 책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의 장점이 그 단점을 상쇄하고 남을 때, 그때에는 나의 친구가 될 수가 있다. 나는 ‘愛知의 숲’에서 그들과 성교를 즐기면서, 오직, 나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독창성은 자기 자신만의 사유의 결과이며, 그것은 삶의 투신에의 문제이다. 어쨌든 그 지혜로운 사상가의 생활은 그 무엇보다도 용기를 필요로 한다. ‘만인 대 일인의 싸움’, ‘나는 신성모독을 범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나의 존재론을 밀고 나간다면, ‘세계는 나의 범죄의 표상이다, 고로 행복하다’라는 나의 행복론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그 낙천주의자의 명제들을 정식화시켰고, 그 결과, 한국사회에서 철두철미하게 소외되고 박해를 받아왔다. 그러나 나의 철학예술가의 생활은 나날이 즐겁고, 기쁘고, 어쨌든 성실한 자의 그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혜, 용기, 성실----, 나는 이 모든 삼박자를 다 갖추었고, 이 철학예술가의 눈으로 이문열을 바라보면 그의 글도둑질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학문의 꽃인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사회는 그릇된 교육을 받고 있는 사회이며, 그릇된 교육을 받고 있는 사회는 모든 인류의 스승(천재)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는 사회에 지나지 않는다. 이문열 역시도 그릇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역사 철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지 못한 것이고, 이것이 그의 글도둑질의 첫 번째 이유가 된다. 이문열은 사상과 이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독창성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 창조적 독서와 사색의 즐거움도 알지 못한다. 따라서 그는 그의 ‘문학적 주제’를 ‘대서사시적인 주제’로 승화시킬 수도 없었고, 진정한 소설가의 사명인 도덕적 정결성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사상과 이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인간, 독창성과 창조적 독서와 사색의 즐거움도 알지 못하는 인간, 그 인간의 ꡔ젊은 날의 초상ꡕ, ꡔ영웅시대ꡕ, ꡔ오딧세이아 서울ꡕ, ꡔ변경ꡕ, ꡔ삼국지ꡕ, ꡔ수호지ꡕ, ꡔ초한지ꡕ 등은 너무나도 대중적인 통속소설에 불과하며, 역사 철학적인 사유없이 그처럼 많은 글을 쓰고 있었으니, 어떻게 자기 자신의 생각을 가져 볼 수가 있었겠는가? 너무나도 많은 통속소설을 쓰고, 글을 쓰고 또 쓰고 있는 인간이 또한 어떻게 소설가의 사명인 도덕적 정결성을 유지할 수가 있었겠는가? 그는 지혜도 없고, 용기도 없는 인간이며, 대한민국의 역사상 가장 많은 원고료와 인세로 소설가 재벌이 된 인간이며, 그러나 그 인간은 셰익스피어와 괴테와 호머에게 도전해보려는 야심도 없는 인간에 불과하다. 오직 그는 성의 문제와 페미니즘, 그리고 김대중 정권에 대한 극우 보수주의적인 언동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장본인이며, 이 땅의 미래의 우리 한국인들에게도 가장 매력이 없는 인간이다. 이문열의 너무나도 많은 대중적인 통속소설은 사색하지 않은 자의 글쓰기에 불과하며, 그것은 반드시, 자기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었던 그만큼, 글도둑질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는 사색하지 않는 인간이며, 사교무대의 얼굴마담이고, 오직, 상업주의의 늪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가련한 인간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 그의 상업주의는 그 글도둑질의 또하나의 이유가 되어주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문열의 ꡔ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ꡕ이 대한민국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되고, 또 이 땅의 어린 아이들이 이문열의 도덕적 정결성에 찬양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이문열의 개인의 영광과 그를 배출해낸 민음사의 상업적 이익을 위해서 천하의 대사기꾼적인 그의 글도둑질을 언제까지나 쉬쉬하고 덮어두고만 있을 것이란 말인가? 이문열은 대한민국의 대작가도 아니며, ꡔ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ꡕ의 ‘엄석대’보다도 더 도덕적 정결성을 갖춘 인간도 아니다. 자기 자신의 역사 철학적인 무지와 그것의 한계를 극복하고,호머나 셰익스피어나 괴테처럼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게 세계정복운동을 펼쳐나가야 되는 것이 그의 사명이건만, 기껏해야 무협소설에 불과한 ꡔ삼국지ꡕ와 ꡔ수호지ꡕ와 ꡔ초한지ꡕ를 평역하고 있는 추태를 생각해본다면, 그의 작가 의식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상업성으로 물들어 있고, 돈과 명예는 같은 무대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려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문열은 역사와 민족 앞에, 이 글을 읽는 즉시 사죄하고, 그의 대부분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이제는 한국문단에서 은퇴를 해야만 한다. 이제 모든 대학생들과 시민단체와 민족문학작가회의를 비롯한 지식인들은 이러한 한국문단의 국제적 망신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 위해서라도, ‘이문열의 은퇴와 절필 선언’을 유도해야만 하고, ‘글도둑질 추방운동본부’를 상설하여 하루바삐 표절의 문제를 근절시켜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http://www.ejiweb.com/bbs/zboard.php?id=literaturestudy&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9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by 트릭키 | 2008/06/18 08:40 | 세상사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4)

트랙백 주소 : http://housezip.egloos.com/tb/48385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眞明行 at 2008/06/18 17:34
그렇게 보신다면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는 가시와바라 효지의 <먼 길長い道>을 표절한 셈이군요. 하여간 재미있습니다. 물고 물어뜯는 모습들이..
Commented by ㅇㅇㅇ at 2008/06/18 18:47
이문열따위가 대표적 문학가라는게 대한민국의 수치죠.
황석영도 그렇고요. 뭐 본문에 이미 "외국 작품을 베껴썼다"고 나와있군요.
베낀놈이나, 베낀걸 또 베낀놈이나, 너저분하긴 마찬가지네요.
Commented by 선도투 at 2009/02/21 00:30
이 글 좀 싸이클럽 http://club.cyworld.com/club/main/club_main.asp?club_id=52705975 로 담아가겠습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피식 at 2009/03/22 03:14
그러면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은 또 어디 표절인가요? 비평이 뭔지도 모르면서 긴글이면 그만인 세상이군요 ^^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